칼럼

미국-이란 전쟁 직전, '책임 귀속' 커뮤니케이션 전쟁이 결정한다

멜론토끼 2026. 1. 30. 10:31

미국-이란 전쟁 직전, '책임 귀속' 커뮤니케이션 전쟁이 결정한다

2026년 1월 30일,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중동 해역에 도착했다. 구축함 6척이 함께 배치됐고, 공군은 다국적 훈련을 진행 중이다. 반대편에서 이란은 드론 1,000대를 실전 배치했고, 혁명수비대 해군은 2월 1~2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예고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원유 공급의 20%가 통과하는 경제 생명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준비됐고, 의지가 있으며, 능력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육군 총사령관 아미르 하타미는 "어떤 침략자에게도 압도적 응징을 가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표면적으로는 군사적 대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위기관리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 '누가 책임자인가'를 규정하는 커뮤니케이션 전쟁이다.

상황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SCCT): 책임 귀속이 모든 걸 결정한다

상황적 위기 커뮤니케이션 이론(Situational Crisis Communication Theory, SCCT)은 위기관리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프레임워크다. 이 이론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인식되느냐에 따라, 조직이 선택해야 할 대응 전략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SCCT는 위기를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 희생자 위기(Victim Crisis): 조직도 피해자인 경우 (자연재해, 외부 공격)
  • 사고 위기(Accidental Crisis): 의도는 없었지만 실수로 발생한 경우 (제품 결함, 기술 오류)
  • 의도적 위기(Intentional Crisis): 조직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경우 (불법 행위, 고의적 은폐)

이 중 의도적 위기는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을 부과받는다. 그리고 책임이 높을수록, 사과·보상·구조 개선 같은 재건 전략(Rebuilding Strategy)을 써야 한다. 만약 책임이 명확한데도 부인하거나 상대를 공격하면, 공중 신뢰는 회복 불가능해진다.

 

지금 미국과 EU는 이란 정부의 시위 진압을 의도적 위기로 규정하려 한다. 이란은 이것을 희생자 위기로 프레이밍하려 한다. 이 프레이밍 싸움의 결과가, 전쟁 정당성을 결정한다.

사망자 통계 논쟁: 숫자가 책임을 만든다

1월 8일, 이란 보안군이 전국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차단됐고, 거리에서 총격이 벌어졌다. 이란 정부는 사망자를 3,117명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기반 인권단체 HRANA(Human Rights Activists News Agency)는 6,373명의 사망을 확인했다. 조사 중인 사례까지 합치면 2만 3천 명이 넘는다.

 

이 격차는 단순한 통계 오차가 아니다. SCCT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책임 인식(Attribution of Responsibility)' 싸움이다. 만약 국제 사회가 HRANA의 수치를 받아들이면, 이란 정부는 "자국민을 대규모로 학살한 불법 정권"으로 규정된다. 이것은 의도적 위기에 해당하며, 외부 개입이 정당화된다.

 

1월 28일, EU는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프랑스가 입장을 바꾸면서 EU 27개국 전체가 합의했다.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자국민의 시위를 피로 진압하는 정권을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SCCT에서 말하는 '공식적 책임 귀속(Formal Attribution)' 단계다. 일단 국제기구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지목하면, 그다음 단계는 제재 정당성 확보로 자동 이행된다. 테러 조직 지정은 금융 거래 차단, 자산 동결, 여행 금지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 모든 조치는 "정당한 국제 사회의 대응"으로 포장된다.

공격 전략의 함정: 협상 가능성이 사라진다

미국과 이란은 모두 공격 전략(Attack the Accuser)을 선택했다. 트럼프는 이란을 "테러 정권"이라고 규정했고,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샴하니는 미국을 "침략자"라고 맞받아쳤다.

 

SCCT는 공격 전략의 위험성을 명확히 경고한다. 책임이 명확한 상황에서 공격 전략을 쓰면, 공중 신뢰가 급격히 악화된다. 왜냐하면 공중은 "저 조직은 책임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협상은 결렬됐다. 터키 외교장관 하칸 피단이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를 만나 중재를 시도했지만, 미국은 핵 농축 중단·미사일 제한·대리 세력 통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란은 핵 농축은 주권 문제라며 거부했다. SCCT 용어로는 '재건 전략(Rebuilding Strategy) 실패'다. 재건 전략은 피해 보상, 사과, 구조적 개선을 포함하는데, 양측 모두 이것을 거부했다.

지역 동맹국의 거부: 2차 위기 위험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가 1월 27일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영공 사용 불허"를 선언했다. UAE와 카타르도 같은 입장이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면 이들의 영공이 필요한데, 모두 거부한 것이다.

 

왜일까. SCCT는 이것을 '2차 위기(Secondary Crisis)' 위험으로 설명한다. 사우디가 미국을 도와 이란을 공격했다가, 이란이 보복하면 그것이 사우디에게 새로운 위기가 된다. 2019년 사우디 아람코 시설이 이란 드론 공격으로 석유 생산 50%를 상실한 전례가 있다. 사우디는 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결국 미국은 정당성은 확보했지만, 실행 수단은 제약받는 딜레마에 빠졌다. EU의 테러 지정, 항모 배치, 여론 조성까지 완료했지만, 정작 지역 동맹국들이 협력을 거부하면서 실제 군사 작전은 어려워졌다.

위기 이력 효과: 반복된 위기는 더 강한 제재를 부른다

2025년 6월,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드나잇 해머 작전'으로 이란 핵시설을 공습했다. 초기 평가는 "극도로 심각한 파괴"였다. 하지만 몇 달 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포르도 시설 피해가 예상보다 적다"고 수정 보고했다. 이란이 몇 개월 내 핵 농축을 재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SCCT는 이것을 '위기 이력(Crisis History)' 효과라고 부른다. 같은 조직이 같은 유형의 위기를 반복하면, 책임 인식이 더 강화되고, 더 강력한 제재가 정당화된다. 이란이 핵 개발을 계속한다면, 첫 공습은 "경고"였고 두 번째는 "본격 제재"가 된다.

전쟁은 메시지가 결정한다

지금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군사적 대치가 아니다. 누가 책임자인가를 규정하는 커뮤니케이션 전쟁이다. EU는 이란을 책임자로 지목했고, 미국은 군사력을 배치했으며, 이란은 보복을 경고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가 협력을 거부하면서, 미국은 정당성은 있지만 실행은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SCCT가 말하는 핵심 교훈은 이것이다. 위기 대응 전략은 책임 수준에 맞춰야 한다. 책임이 명확한데 부인하거나 공격하면, 신뢰는 회복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재건 전략을 쓰면, 신뢰는 회복 가능하다.

 

지금 미국과 이란 모두 공격 전략을 선택했다. 이 전략이 계속되면, 협상 가능성은 사라지고 전쟁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지역 동맹국들의 거부는 실행 가능성을 낮춘다. 결국 이 위기의 결말은, 누가 먼저 전략을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전쟁은 무기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 미국과 이란이 선택한 메시지는, 전쟁 쪽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