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악재에도 솟구친 금과 은, 시장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멜론토끼 2026. 2. 12. 10:49

 

경제 지표를 해석할 때 우리는 종종 과거의 경험칙에 의존합니다. “경기가 좋아지면 금리는 오르고, 이자가 없는 금은 떨어진다”는 명제는 지난 20년간 투자자들에게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시장은 이 오래된 믿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던 미국의 1월 고용 지표 발표 직후, 오히려 금과 은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현상은 단순한 이변을 넘어선 구조적 변화를 시사합니다.


이날 발표된 수치는 귀금속 시장에 명백한 악재였습니다. 신규 고용은 13만 명으로 시장 예상치인 5만 5천 명을 압도했고, 실업률은 4.3%로 떨어졌습니다. 교과서대로라면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꺾이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귀금속은 하락 압력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현물 금은 온스당 5,090달러를 넘어서며 1% 이상 올랐고, 은은 무려 6.6%나 급등해 86달러 선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펀더멘털과 가격의 괴리가 극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이러한 ‘비상식적’ 움직임의 배후에는 거시경제 지표보다 더 강력한 수급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축은 중앙은행입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15개월 연속 금 매입을 이어가며 외환보유액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J.P. Morgan은 올해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이 800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는 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하단을 지지하는 강력한 버팀목이 됩니다. 여기에 민간 투자자들의 심리 변화도 가세했습니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에만 금 ETF로 19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자금이 유입되었습니다. 고점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몰린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금을 단순한 차익 실현 대상이 아닌 필수적인 위험 회피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통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금리 정책의 영향력을 덮어버렸다”고 분석합니다. 캐피털닷컴의 애널리스트 카일 로다의 언급처럼, 귀금속 시장이 사실상 금리 정책과 ‘분리(decoupling)’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골드만삭스가 연말 금 가격 목표치를 5,400달러로 상향 조정한 배경에도 이러한 구조적 수요에 대한 확신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단 하나의 지표로 모든 추세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이번 주 후반 발표될 인플레이션 데이터는 또다시 시장을 시험대에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던 과거의 투자 공식이 더 이상 100% 들어맞지 않는 시대에 진입했다는 사실입니다. 강력한 경제 지표와 사상 최고가 귀금속이 공존하는 지금의 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유연한 사고와 구조적 흐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금리가 오르면 판다”는 단순 대응을 넘어, 왜 거대 자본이 끊임없이 실물 자산으로 이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